월간 보관물: 12월 2011

검은꽃 – 김영하

김영하의 장편소설이다. 배경은 대한제국 말기에 멕시코나 미국으로 이민과 관련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신분사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쓰러져 가는 상황에서 이민선을 탈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춰낸다. 주로 현대인들의 사랑과 고독 혹은 슬픔을 차가운 시선으로 담았던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다. 이작가가 그작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며 스토리 전개가 모두 낯설다.

아직 앞부분이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한편의 역사적 다큐를 보는 느낌이랄까…중후미로 가면서 김영하씩 참신한 발상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을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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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인물 위주로 얘기가 돌아간다. 작가의 개입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 역사적인 어떤 사실에 근거를 둔 치밀한 상황전개로 소설인지 다큐인지 헷갈리게 한다. 어디에도 내가 알고 있는 작가 김영하의 모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 태양평을 거너 멕시코로 가고 있는 이민선의 안의 사건들 얘기들은 생생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 자꾸 책장이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구역질 나는 장면도 있었다. 이정과 요시다의 동성간의 섹스, 일방적인 성접대라고 해야하겠지만, 생각만해도 메스껍다. 그러고 또 아이러니하게 이정과 연수의 풋풋한 첫관계도 이어진다. 아직까지 이 두 관계가 무얼 의미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작가는 이런걸 묘사할 때 엮겨웠을까…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100여페이지를 읽었는 데 아직 주인공이 누군지, 앞으로 일어날 인물간의 갈등, 사건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김영하의 단편집을 먼저 읽은 탓일까. 상황전개가 너무 더딘 것 같다. 한달간 더럽고 좁은 배에서 지내며 볼꺼 안볼꺼 다 보며 굿굿하게 살아남은 등장인물들은 대단하지만 나의 머리는 구역질이나고 밤에 악몽을 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의 의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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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농장에서의 삶 역시 바닥이다. 생사를 오락가락할 정도로 비참하고 힘들다. 역사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다 보니 작품 속의 표현들이 너무 사실적이고 직설적이다. 생사와 관련되어 있으니 오죽하랴. 피와 땀, 배설물, 역겨움이 뒤범벅되어 보는 내내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어디에도 김영하의 느낌, 작가의 개입이 별로 없다. 출처가 따로 있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와 진행이다. 이젠 전개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짜잔한 사건부터 해서 죽음을 부르는 큰 사건까지 도미노처럼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또 애틋한 사랑의 재점화도 멀지 않은 듯하다. 인정과 연수와의 만남 말이다. 물론, 작가가 순수하게 사랑을 얘기하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기에 둘의 만남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예상을 해보면, 연수는 생활고에 어쩔 수 없이 통역관에게 몸을 팔고 뜻하지 않는 임신을 한다. 인정은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는 연수를 만나지만, 그녀에 대한 좌절감과 괴로움을 겪다가 통역관을 죽여버린다. 그는 쫓기는 몸이 되고 생사를 오고 가며 여러 사건에 맞서게 된다….

아직 나의 감성이 사그라지지는 않았나 보다. 작품 속의 침울하고 역겨운 상황 속에서도 풋풋한 인정과 연수의 연애장면에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들의 재회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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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연수는 임신을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통역관이 아닌 이정의 애를 뵌 것이다. 우연히 연수가 있는 농장으로 온 이정은 서로를 알아보고 미친듯이 사랑에 빠진다. 밤마다 서로를 탐닉했고 이를 시기한 통역관의 계략으로 이정은 또 다른 곳으로 팔려간다. 앞으로의 험란한 인생역정이 예상되는 장면이다.

그들은 하루하루 먹기 살기 빠듯한 타지에서도 적응을 해간다. 일부는 노름을 또 일부는 여색을 밝히고… 인간의 본성은 이런 것이다라고 알리고 싶은 의도인지 … 작가는 작정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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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넘어가면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른다. (이 소설은 1, 2,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연수가 통역관을 찾아가 만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평소 흠모하는 통역관은 놀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한다. 다음은 어떻게 될까… 작가도 물론, 이 부분에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구질구질한 역경의 삶을 묘사하지 않겠냐는 기대와는 달리 아주 깔끔하고 세련되게 이 둘의 관계를 설정했다. 난 잠시 충격에 빠졌다. 둘의 관계와 그리고 그때 배속에 있던 아이까지…

시간의 흐름은 모든 걸 바꿔놓고 있었다. 끔찍한 고용 계약도, 애절한 사랑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 결국 삶을 연속할 수 있는 것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며 살아간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 아니겠는가… 안 보면 죽고 못 사는 연인도 헤어져서 몇 년이 지나면 웃음거리 밖에 안되는 추억이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아직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겠다. 연수를 잊지 못한 이정을 주인공으로 보기에는 2부에서 비중이 너무 낮은 듯 하다. 1부에서 어느 농장으로 팔려나가고는 잘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연수의 행동 하나하나가 스토리를 전개하는 핵심이 된다. 통역관과의 동거, 의미 없는 섹스, 탈출, 감금,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 하지만 주인공으로 보기엔 수동적인 면이 많아서 조연급 역할에 충실해 보인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 설명이나 인물 묘사에 디테일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다. 물 흐르듯 이야기와 대화가 전개되면서 곁가지씩으로 간단하게 설명을 넣을 뿐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런 거 하나하나가 영상미를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바보 빅터 – 호아킴 데 포사다

IQ 73..!

빅터는 17년간 바보로 살았다. 어눌한 말투와 엉거주춤한 자세 그리고 표정들, 모두들 그 숫자를 조롱하며 빅터를 바보로 바라 보았다. 빅터는 한곳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단순한 일을 구해 삶을 살아간다. 바보란게 탈로날까봐서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자신감도 없었다. 그러다가 17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의 IQ가 73이 아니라 173이란 걸 알게된다. 최고의 IQ였던 것이다….

그 좋은 머리를 타고 났지만, 17년간 바보로 살았던 빅터는 깨달았다.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겐 아니라는 것을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탁월한 재능은 타고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 스스로를 옥죄고 있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면서 말이다. 내가 자라면서 들었던 암울한 얘기들, “재능이 없네, 그건 잘하는 애들이 따로 있어, 운동 신경이 떨어진다, 자신감이 없다…” 이런 얘기들 속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성인이 되어서야 재능과 관련된 여러 책들을 통해 인간의 가능성이란게 무한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물론, 처음엔 주위 환경을 먼저 탓했다. 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 문제란걸 알게 되었다.

자신의 능력을 발굴하고 키우는 데는 정해진 때가 없다. 언제든 노력하면 될 수 있다. (물론, 내가 100m를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서 우샤인 볼트보다 빠를 순 없다. 하지만 그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체적인 기능이 퇴화해가는 생물학적인 현상이다. 지속적인 운동은 이 퇴화를 늦추어줄뿐이다. 반면에 정신적인 면은 절대 퇴화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 진정한 희열을 느낀다. 인물 스케치 4개월에 가끔은 나도 놀라는 여인네를 그리고 있다. 처음 시작은 선긋기로 시작했다. 그나마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전혀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재미도 없었다. 강사의 화려한 손놀림에 그저 한숨만 터져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강사가 나를 칭찬하기 시작한다. 주위 회원들에게 나를 지칭하며 저런식으로 그려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놀랍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을 스스로 바보 빅터가 겪었던 것과 같은 그늘에 가려 살아 가려고 한다. 부정적인 말들, 자신감을 상실케 하는 언사들은 절대 삼가해야 한다. 이 지구상에 영원 불변의 진리라는 게 존재하지 않듯, 우리네 인생도 정답이란 게 없다. 자신의 행동과 노력이 정답이라고 믿고 살아가야 한다.

자식을 키우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절대 아이의 가능성을 갉아먹는 얘기들을 해서는 안된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들을 가르치는 데도 부족한 시간이다.

‘한 쇠막대기가 있다. 이 쇠를 두들겨 말굽으로 만들면 10달러 50센트의 가치가 된다. 이것을 못을 만들면 3,250달러의 가치가 된다. 그리고 이것을 시계의 부속품으로 만들면 250만 달러의 가치가 된다.’

스스로를 믿고 진화하자. 그것이 인생의 재미 아니겠는가…

비상구 – 김영하 단편

배꼽아래 화살 문신을 한 여자와 갓 성인이 된, 삶을 되는대로 대충대충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둘은 그냥 한 여관방에서 기거하며 살아간다.

작가는 화살 문신을 눈여겨보며 그 주변의 정밀한 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섹스와 광기어린 장난들 그리고 범죄의 현장을 다룬다.

내가 작가라면 이런글을 과연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용이 너무나 천박하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야하기도 하고 또 쌍욕들이 난무한다. 팟캐스트의 차분한 분위기있는 목소리의 그 작가가 맞을까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작품이나 작가를 비하하는게 아니다. 오히려 동경한다. 자기를 버리고 또다른 차원의 세계를 형상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를 부러워한다. 나라면 독자들이 나를 이 글의 주인공과 동일시 하지 않을지 행여나 아는 사람이 읽기라도 하는 날에는 얼마나 쪽팔릴까하는 생각이 앞설 것 같다.

김영하의 작품에는 사랑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보다는 물리적인 본능적 욕망에 더 가깝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플라토닉한 사랑이란 성인이 되기 전에만 가능한 아주 짧은 시기에만 유효한 것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전해 주고픈가 보다.

아랑은 왜 – 김영하

내가 접하는 김영하의 첫번째 장편이다.
이미 단편을 엮은 그의 소설집에서 형식의 파괴를 경험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매우 모호하게 설정하는 기술도 역시나. 그러니 당연히 장편은 어떨까하는 기대가 생길 수밖에…

아랑의 전설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독자가 느끼기는 힘들다. 작가는 아랑의 전설이 구전되면서 많은 변형이 있었고 또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또다른 재미를 주었을 것이라 여겼다. 또 관점에 대해 얘기한다.

관점 얘기가 나오면서 문득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과연 장편을 쓰려고 한건지 아니면 글쓰기와 상상력이 필요한 작가를 위한 교본을 만들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안가질 수 없게된다.

아랑의 전설을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랑의 관점이 아니라 아랑을 키운 유모의 입장이나 혹은 사건을 풀어야 하는 고을의 사또의 눈으로 보게 된다면 독자들이 느끼는 시공간의 차이가 확연할 것이고 흥미를 줄 수도 있다.

작가란 다 아는 이야기를 다르게 말하는 직업이다.라고 나온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12/29…

뒤로 갈수록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붙는다. 애들이 책읽어달라 블록 같이 맞추자는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나는 굿굿이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친다.

현대의 영주와 조선시대의 아랑을 엮는다는 발상은 좋으나 그닥 연관성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별개의 얘기를 한 소설에도 섞어 놓은 것 같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스토리에 빠지기 보다는 이걸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헌을 뒤졌을까에 머리가 아파왔다. 마치 내가 작가인양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침침해오는 눈을 비벼가며 온갖 고서를 뒤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생소한 용어들, 억울한 원한에 대한 뻔한 스토리에 전혀 색다른 숨은 얘기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굴렸을지, 도대체 이것뿐인가 자책하는 울부짐이 들리는 듯 하다.

현대의 박이 살인자로 몰려 취조를 당하는 장면에서는 엄청난 속도감과 분노가 느껴진다. 등장인물이란게 작가의 상상력으로 등장하는 인물인데, 결국은 모두가 작가 그 자신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데, 그 취조 장면에선 나라면 어찌했을까…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을까, 아니면 좀 더 현명하게 폭력에 대해 고발을 하겠다는 위협으로 모면할까..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다 짜고치는 고스돕인데, 왜 순간 그런것을 잊어버리고 흥분한 것일까.

작가의 속도감은 여러차례 지적한 바대로 진행하는 글과 대화체를 구분하지 않고 막(?) 써내려가는데도 있고, 과감한 생략을 하지만 오히려 생동감있는 문체에 있다.

나도 지금 막 써내려가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고 문법도 엉망이겠지만 다음에 기회되면 수정하고..아니면 말고..

김영하의 소설에는 정사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단편집에서 보여줬었던 치밀하고 관능적인 수준에 비하면 한참을 못 미친다. 아쉽다. ㅋㅋ 그럴수밖에… 여기 주제는 살인사건이기 때문이다.

아랑스토리에 아쉽다면, 아랑이 얘기가 별로 없다. 러브 스토리나 혹은 정사신이라도..ㅎㅎ 현실의 영주와 박의 무덤덤한 사랑을 보여주듯 아랑에 대한 스토리 전개가 없다. 왜 그랬을까. 아마 귀찮았을 것이다. 현대극과는 달리 조선시대의 러브스토리를 만들려면 고대 서적을 얼마나 더 덜추어봐야 할까. 그리고 그 여인네는 화장이며 옷에 신경을 썼을 것이고 그 당시 유행하는 머리스타일이나 장신구, 데이트 장소나 방법, 대화…머리가 아팠을 것 같다.

괜찮다…. 엉켜있는 사건을 푸는 억균의 캐릭터도 좋았고, 고약한 어사도 , 독종같은 형사도, 유약한 박도, 호장이라는 놈도 좋았다.

크리스마스 캐럴 – 김영하 단편

정식이 곁눈으로 영수를 보며 속삭였다. 야, 우리 안 만나야 하는 거 아니냐? 종업원이 무심한 얼굴로 메뉴판을 들이밀었다. 여기 커피요. 아, 아무거나, 그래요, 아메리칸 커피.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뭐 죄졌냐? 우리가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냐? 정식이 사탕껍질을 벗겨 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그게 아니라, 씨발, 의심받을 수도 있잖냐.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만냐야 할 이유도 없잖아. 야, 근데 저 새끼들 짭새 아니냐? 정식이 구석자리에 앉은 남자들을 지목하며 물었다. 아닌 것 같아. 짭새들은 양복 안 입어. 입는 새끼들도 있어. 여수 몫의 커피가 날라져왔다.

보통 대화는 쌍따옴표로 빼기 마련인데, 위 문장을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다. 두명의 친구가 나누는 대화들, 배경설명, 행동 하나하나가 어색함이 없다. 작가 김영하는 이런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처음에는 인쇄하다가 실수로 잘 못 엮은 건 아닌지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소설에 몰입하기 좋아서 빠르게 책을 읽어 내려가게 된다. 이런 형태는 처음 접해본다.

글을 쓰다보면, 특히나 소설같은 경우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주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으므로 일일이 이를 구분하여 쌍따옴표를 붙여주다보면 흥이 깨지기 쉽상이다. 작가 김영하도 이런 걸 수없이 경험하며 자기만의 회피방안을 만든 듯 하다.

‘크리스마스 캐럴’ – 고요한 밤, 거룩한 밤…평화롭고 안락한 밤이 생각나겠지만, 이 단편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진실을 공유한 대학동창들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어느 날, 일명 ‘걸레’라고 불리는 한 대학 여 동창에세게서 크리스마스 카드가 날아온다. 그리고 뉴스에 그 여동창이 처참하게 피살된 게 나온다. 남동창생들은 찌든 일상과 부부관계에서 또다른 악재가 겹친다. 과거 대학시절 얘기들이 나오고, 현실에서 마치 자기들이 살인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하며 괴로워한다. …

이사 – 김영하 단편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하염없이 착하거나 올바른 정신을 가진 인물은 크게 주목 받지 못하지만 제대로 된 악역은 눈에 확 드러난다.

김영하의 단편 “이사”에 등장하는 이삿짐 인부들이 그러하다. 그 중 노란 셔츠의 사나이가 그 정점에 있다. 이삿짐 계약을 할 때와는 달리 건달 같은 일꾼들이 나타나 당사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냉장고를 임의로 열어 맥주 캔을 까거나 값비싼 물건에 대해 호기심을 보여 주인을 불안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이삿짐을 파손하거나 새로운 장판이나 벽지를 훼손시킨다. 그러고도 태연하다. 오히려 화를 낸다.

이런 극중인물들을 만나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가슴 한편이 답답해 오고, 만약 나라면 어찌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결국 작가는 독자의 이런 심리를 잘 끄집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단편에서는 더하다. 작가는 이런 캐릭터 설정 작업에 괜찮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너무 지나쳐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거란 느낌보다는 어..나도 그런 놈 만난 적 있는데, 주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돌아이 같은 놈이네..하는 식으로 인지하게 하는 거 말이다.

작가는 왜 이 단편을 썼을까?

“이사”라는 건 소설을 구성하기 위한 일종의 포장지이고 진짜 중요한 핵심은 주인공이 화가나서 호기 좋게 노란 셔츠 사나이의 멱살을 잡았다가 오히려 나가떨어지는 장면이다. 나는 요 장면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여러 가지 떠오르는 생각들을 잡아 보았다. 나의 힘만으로 헤쳐나올 수 없었던 순간들, 비굴했던 모습들, 슬픔, 쪽팔림….

작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대체적으로 약하면서도 선하다. 그도 이런 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어느 날 잠을 설치며 깼을 때 문득 그런 아픈 기억이 떠 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사라는 조금은 일상적인 얘기와 믹스시켜 독자와 아픔을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이 단편의 결말은 상당히 무기력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끼는 물건은 망가졌지만 그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못한 채 끝을 맺는다. 경찰을 부르기도 소송을 하기도 겁나고 …또 귀찮다.

사진관 살인사건 – 김영하

“사진관 주인이 둥기로 살해당한다. 그의 와이프와 사진을 자주 맡기는 한 손님이 용의선상에 올라있다. 나는 형사다. …”

이것만 보면 별 얘기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작가는 세심한 인물묘사와 사건을 만들며 재미를 주고 있다. 김영하의 작품을 이제 몇 편 읽었지만 인물묘사에 있어서 독특함이 묻어나고 뭔가의 아련함을 주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보인다.

사진관의 여인도 지극히 재미없고 평범한 결혼생활에 일종의 가벼운 일탈을 준다. 하지만 그냥 주면 재미없으므로 주인공을 조금 예쁘고 매력적으로 그려본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손님은 또한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역시 일탈을 위한 작은 구멍을 열어둔다. 한 번에 마음을 열면 재미없으므로 조금씩 꺼리를 만드는게 마치 이 작가의 글쓰기 형태와 유사하다.

결국 범인은 엉뚱한데서 나오지만, 사실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다. 살인사건에서 용의자들간의 사랑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단편이 늘 그렇지만 결말이 흐지부지라고 말했었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주인공인 형사의 와이프가 등장하며 가벼운 실랑이와 꿈얘기로 마무리 된다. 도대체 연관이 되지 않는다. 작가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다.

“왜 뜬금없이 와이프를 등장시켰고 행복한 꿈을 꾼걸로 결말을 낸 건 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