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꽃 – 김영하

김영하의 장편소설이다. 배경은 대한제국 말기에 멕시코나 미국으로 이민과 관련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신분사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쓰러져 가는 상황에서 이민선을 탈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춰낸다. 주로 현대인들의 사랑과 고독 혹은 슬픔을 차가운 시선으로 담았던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다. 이작가가 그작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며 스토리 전개가 모두 낯설다.

아직 앞부분이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한편의 역사적 다큐를 보는 느낌이랄까…중후미로 가면서 김영하씩 참신한 발상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을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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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인물 위주로 얘기가 돌아간다. 작가의 개입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 역사적인 어떤 사실에 근거를 둔 치밀한 상황전개로 소설인지 다큐인지 헷갈리게 한다. 어디에도 내가 알고 있는 작가 김영하의 모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 태양평을 거너 멕시코로 가고 있는 이민선의 안의 사건들 얘기들은 생생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 자꾸 책장이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구역질 나는 장면도 있었다. 이정과 요시다의 동성간의 섹스, 일방적인 성접대라고 해야하겠지만, 생각만해도 메스껍다. 그러고 또 아이러니하게 이정과 연수의 풋풋한 첫관계도 이어진다. 아직까지 이 두 관계가 무얼 의미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작가는 이런걸 묘사할 때 엮겨웠을까…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100여페이지를 읽었는 데 아직 주인공이 누군지, 앞으로 일어날 인물간의 갈등, 사건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김영하의 단편집을 먼저 읽은 탓일까. 상황전개가 너무 더딘 것 같다. 한달간 더럽고 좁은 배에서 지내며 볼꺼 안볼꺼 다 보며 굿굿하게 살아남은 등장인물들은 대단하지만 나의 머리는 구역질이나고 밤에 악몽을 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의 의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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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농장에서의 삶 역시 바닥이다. 생사를 오락가락할 정도로 비참하고 힘들다. 역사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다 보니 작품 속의 표현들이 너무 사실적이고 직설적이다. 생사와 관련되어 있으니 오죽하랴. 피와 땀, 배설물, 역겨움이 뒤범벅되어 보는 내내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어디에도 김영하의 느낌, 작가의 개입이 별로 없다. 출처가 따로 있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와 진행이다. 이젠 전개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짜잔한 사건부터 해서 죽음을 부르는 큰 사건까지 도미노처럼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또 애틋한 사랑의 재점화도 멀지 않은 듯하다. 인정과 연수와의 만남 말이다. 물론, 작가가 순수하게 사랑을 얘기하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기에 둘의 만남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예상을 해보면, 연수는 생활고에 어쩔 수 없이 통역관에게 몸을 팔고 뜻하지 않는 임신을 한다. 인정은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는 연수를 만나지만, 그녀에 대한 좌절감과 괴로움을 겪다가 통역관을 죽여버린다. 그는 쫓기는 몸이 되고 생사를 오고 가며 여러 사건에 맞서게 된다….

아직 나의 감성이 사그라지지는 않았나 보다. 작품 속의 침울하고 역겨운 상황 속에서도 풋풋한 인정과 연수의 연애장면에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들의 재회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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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연수는 임신을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통역관이 아닌 이정의 애를 뵌 것이다. 우연히 연수가 있는 농장으로 온 이정은 서로를 알아보고 미친듯이 사랑에 빠진다. 밤마다 서로를 탐닉했고 이를 시기한 통역관의 계략으로 이정은 또 다른 곳으로 팔려간다. 앞으로의 험란한 인생역정이 예상되는 장면이다.

그들은 하루하루 먹기 살기 빠듯한 타지에서도 적응을 해간다. 일부는 노름을 또 일부는 여색을 밝히고… 인간의 본성은 이런 것이다라고 알리고 싶은 의도인지 … 작가는 작정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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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넘어가면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른다. (이 소설은 1, 2,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연수가 통역관을 찾아가 만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평소 흠모하는 통역관은 놀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한다. 다음은 어떻게 될까… 작가도 물론, 이 부분에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구질구질한 역경의 삶을 묘사하지 않겠냐는 기대와는 달리 아주 깔끔하고 세련되게 이 둘의 관계를 설정했다. 난 잠시 충격에 빠졌다. 둘의 관계와 그리고 그때 배속에 있던 아이까지…

시간의 흐름은 모든 걸 바꿔놓고 있었다. 끔찍한 고용 계약도, 애절한 사랑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 결국 삶을 연속할 수 있는 것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며 살아간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 아니겠는가… 안 보면 죽고 못 사는 연인도 헤어져서 몇 년이 지나면 웃음거리 밖에 안되는 추억이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아직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겠다. 연수를 잊지 못한 이정을 주인공으로 보기에는 2부에서 비중이 너무 낮은 듯 하다. 1부에서 어느 농장으로 팔려나가고는 잘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연수의 행동 하나하나가 스토리를 전개하는 핵심이 된다. 통역관과의 동거, 의미 없는 섹스, 탈출, 감금,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 하지만 주인공으로 보기엔 수동적인 면이 많아서 조연급 역할에 충실해 보인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 설명이나 인물 묘사에 디테일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다. 물 흐르듯 이야기와 대화가 전개되면서 곁가지씩으로 간단하게 설명을 넣을 뿐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런 거 하나하나가 영상미를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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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검은꽃 – 김영하

  1. hangozip 2011/12/31 (5:14 오전)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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