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월 2012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 이상원

책 제목에 끌려 무작정 주문했다.

글 쓰는 법을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또 이왕이면 최고의 수재들만 가는 서울대 수업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어보고 싶었다. 대학교에 갓 들어가 첫 수업을 듣는 설렘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이 책은 글 잘쓰는 법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럼 도대체 뭘 알려 준다는 거지?’ 좀 더 읽어보니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 즉 교수법에 대한 얘기를 한다고 한다. 이것만을 다루기엔 책이 너무 두꺼운 거 아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고 봤는데 정말 글 잘 쓰는 법은 나오지 않았다. 숨겨둔 보물을 찾듯 속속들이 들여다봤지만, 단지 수업 진행방식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둘 뿐이었다. 책 후미는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의 글로 채워졌다.

좋은점은, 서울대에서 최고 인기강좌로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의 진행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교수법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별 영양가가 없겠지만, 이걸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응용할 마음이 있다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세세한 주별 일정이 나와 있고 수업의 진행, 평가방식, 과제(글 쓰고, Feedback)에 대한 운영 방식도 흥미롭다.

수업의 주체는 교수가 아닌 학생이다. 교수는 원활한 수업의 진행을 도와주는 역할만 할 뿐, 나머지는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끼리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한 한기 동안 세 가지 주제로 글을 써야 한다.

첫째는 “나를 소개하는 글”, 자기를 알려 친밀함을 쌓으며 글쓰기 워밍업을 한다.

둘째는 “감상 에세이”, 책, 영화, 공연, 음악, 여행 등 대상을 잡아 글을 쓰게 된다. 재치있는 글이 많이 나오며 유용한 정보도 공유된다.

마지막 “주제 에세이”, 이전보다 깊이가 더해지면서 약간 무거운 사안부터 전문적인 자료 조사가 필요한 것까지 모두 포함된다. 글쓴이의 생각 정리가 필요하고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주제 에세이에 이르면 거의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 못지않은 필력을 보여주는 학생들도 나타난다. 또 자신 내면의 깊숙한 얘기, 가족사를 주제와 연관 지어 솔직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글을 통해 참된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것만으로 엄청난 성과다. 이 세 가지 주제를 진행하는 동안 서로의 글을 보며 댓글을 달고 토론한다.

개인적으로 이 방식을 사내에 적용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일과 맞게 IT 분야의 인문학 글쓰기 모임이 괜찮을 것 같다. 적당한 인원으로 팀을 구성하고 자기 소갯글부터 시작해서 감상에세이 그리고 IT 분야의 전문 주제 에세이로 진행을 하면 매끄러울 것 같다. 이 모임의 목적은 사실 IT의 전문성을 키우는 건 아니다. 일종의 글을 통한 치유와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는 데 있다. 전문지식의 습득은 부차적이다. 또 회사 윗선을 위한 생색내기다.

이 강좌가 최고 인기 강좌가 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로 참여다. 글을 쓰는 동안, 상대방의 글에 댓글을 다는 동안, 토론하며 의견을 교환하면서 본인 스스로 느끼고 성장하는 걸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퀴즈쇼 – 김영하

사람의 감정은 참 묘하다.

작가 김영하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이 사람과 교감 하고 있다는 느끼면서부터다. 작품 전체를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김영하 컬렉션” 묶음 책을 사서 나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부터 시작했다.

단편이란 게 원래 분량 관계로 어떤 사건에 재미를 배가시키거나, 반대로 허무하고 허황된 결말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듯한 작가의 필력에 책을 읽는 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듯 편안했다. 또 그의 소설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사랑과 연애 혹은 섹스가 메마른 삶을 신선하게 적셔주었다. 그러나 작가는 절정에서 갑자기 나락으로 독자를 떨어뜨려 허우적거리게 하고 만다. 허무하게. 짓궂다.

다음으로 장편을 읽었다. 장편 4권 중에 가장 얇은 순으로 순서를 정했다. 금세 지쳐서 질릴까 봐서다. “아랑은 왜”, “검은 꽃”, “빛의 제국” 그리고 가장 두꺼운 “퀴즈쇼”까지 거침없이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과 글발에 감동을 하며 나도 이런 작품 하나 쓸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마지막 작품인 “퀴즈쇼”에 대해 얘기를 좀 더 해보자. 백수인 20대 후반의 남자는 갑작스러운 어머니 같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로 삶이 바뀌기 시작한다. 늘 이용만 당하던 애인과 결별하고 할머니가 진 빚 때문에 사는 집에서 쫓겨나 고시원에서 생활한다.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잘린다. 수중에 돈도 없어서 다음 달 고시원 월세도 치를 수 없다. 그나마 유일한 낙은 인터넷 채팅사이트의 퀴즈방이다. 어릴 적부터 책이며 잡다한 지식을 많이 쌓아서 퀴즈 푸는 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벽 속의 여인”이란 아이디를 쓰는 상당한 실력자가 나타나 퀴즈방을 이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벽 속의 여인”에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주인공은 공중파 퀴즈쇼에 나간다. 본선까지는 무난히 나갔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한다. 방송의 위력은 대단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서 전화와 축하 문자를 받았다. 심지어는 별 친분관계가 없는 데면데면한 사람들까지도 그를 알아보았다. 그때 문득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벽 속의 여인”으로부터… (난 갑자기 애틋한 혹은 야릇한 연애의 감정을 느꼈다. 한동안 느낄 수 없었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그들은 홍대 부근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고 몇 번의 데이트를 거쳐 완전한 연인이 된다.

실제로 “벽 속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건 주인공뿐만 아니었다. 나도 그녀에게 푹 빠졌다. 마치 20대로 돌아가 흠모하는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앞 둔 사람처럼 들떠있었다. 그 여인이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았고 내 스마트폰에 카톡을 날려줄 것만 같았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책장이 넘어가 결말로 가는 게 아쉬웠다. 이별이 싫었다.

이건 일종의 데자뷔다. 20대를 가슴 설레게 했던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후로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풋풋한 사랑과 연인이 되어가며 나누었던 대화, 말투, 몸짓 하나하나 내 기억 속에 숨어있던 감정을 들춰내고 있었다. 언제 이 작가가 내 맘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이대로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고 싶은 심정은 TV드라마 미니시리즈에 해피엔드를 요구하는 시청자와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퀴즈쇼라는 제목이 왜 나왔겠는가, 작가는 연애질만 하게 그냥 두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다. 엄청난 사건이 말이다. 이 책을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면 전기는 평범한 일상에서 사랑의 달콤함을, 반면 후기는 색다른 경험과 사건이 발생하며 독자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결말은…궁금한가? 나처럼 애틋한 감정을 취해 살고 싶다면 전기에서 책을 덮어야 한다. 궁금증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끝까지 읽어라. 현실로 돌아오는 빨간약을 먹게 될거다. 미스테리한 사건속에서 혼돈을 겪으면서 현실로 돌아 온다. 그러나 문득 느끼게 될 것이다. “벽 속의 여인”이 어느새 나의 마음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는 것을.

작가 김영하를 만나고 싶다. 이렇게 애잔한 감정을 느끼게 해 놓고, 왜 갑자기 빼앗아 가는지.

치유의 글쓰기 – 세퍼드 코미나스

인물 스케치를 배운지 벌써 반년이 다되어 간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리듬을 깨어보고자 시작한 취미생활이 어느새 나의 삶의 깊숙한 곳에 들어왔다. 한 사람을 제대로 그리는 데는 약 10시간 정도 걸리지만, 뭐랄까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에 순응해서 다람쥐 쳇바퀴를 돌았으면 맛보지 못했을 달콤함이다.

글쓰기도 이런 게 아닐까. 조금씩 자기를 알아가는 느낌, 자신이 쓴 글에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글쓰기에 빠져들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정신없이 쓰게 될 것이다. 난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치유의 글쓰기를 동시에 시작했다. 새벽 5시 10분에 일어나 졸리는 눈꺼풀을 비벼가며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20분만 쓰려고 했는데, 어느새 시계는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래전 아팠던 기억에서부터 시작해서 어제 직장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것들까지 나의 감정을 실어 적었다. 신기했다. 무료한 일상에 이렇게 적을게 많다는 게…

철저하게 자신만을 글쓰기를 해야 한다. 타인을 의식하는 순간 가식이 비집고 들어오고 진실은 사라진다. 글에 몰입할 수 없거니와 치유와는 거리가 멀게 된다. 하루 20분씩 최소한 90일간 지속적으로 수행하라. 시간으로 따지면 1,800분, 30시간이다. 절대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는다. 몇십 년간 치유하지 못했던 자신을 90일간의 트레이닝으로 그 발판을 잡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글쓰기의 시작은 온라인이나 워드 프로세스 같은 편집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노트를 이용해야 한다. 왜냐면, 이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포스트를 하나 올릴 때 드는 시간과 노력은 상당하다. 문법적인 오류부터, 글의 흐름, 논리, 교정을 손보다 보면 집중력과 흥미가 떨어진다.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지 말고 앞만 보고 써야 한다. 문법이 틀려도 문장이 이상해도 막 써내려가야 한다. 물론, 처음엔 개떡같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제가 되고 진정한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치유의 방법은 단순할수록 좋다. 새벽에 일어나 무작정 책상으로 걸어가서 졸리는 눈을 비비며 노트를 펼치면 된다. 무엇을 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타인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만의 글을 쓰고자 한다면 시시콜콜한 감정부터 오래전 아프거나 즐거웠던 기억들까지 하나 둘 떠올라 주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기분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