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 김영하

사람의 감정은 참 묘하다.

작가 김영하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이 사람과 교감 하고 있다는 느끼면서부터다. 작품 전체를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김영하 컬렉션” 묶음 책을 사서 나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부터 시작했다.

단편이란 게 원래 분량 관계로 어떤 사건에 재미를 배가시키거나, 반대로 허무하고 허황된 결말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듯한 작가의 필력에 책을 읽는 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듯 편안했다. 또 그의 소설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사랑과 연애 혹은 섹스가 메마른 삶을 신선하게 적셔주었다. 그러나 작가는 절정에서 갑자기 나락으로 독자를 떨어뜨려 허우적거리게 하고 만다. 허무하게. 짓궂다.

다음으로 장편을 읽었다. 장편 4권 중에 가장 얇은 순으로 순서를 정했다. 금세 지쳐서 질릴까 봐서다. “아랑은 왜”, “검은 꽃”, “빛의 제국” 그리고 가장 두꺼운 “퀴즈쇼”까지 거침없이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과 글발에 감동을 하며 나도 이런 작품 하나 쓸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마지막 작품인 “퀴즈쇼”에 대해 얘기를 좀 더 해보자. 백수인 20대 후반의 남자는 갑작스러운 어머니 같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로 삶이 바뀌기 시작한다. 늘 이용만 당하던 애인과 결별하고 할머니가 진 빚 때문에 사는 집에서 쫓겨나 고시원에서 생활한다.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잘린다. 수중에 돈도 없어서 다음 달 고시원 월세도 치를 수 없다. 그나마 유일한 낙은 인터넷 채팅사이트의 퀴즈방이다. 어릴 적부터 책이며 잡다한 지식을 많이 쌓아서 퀴즈 푸는 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벽 속의 여인”이란 아이디를 쓰는 상당한 실력자가 나타나 퀴즈방을 이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벽 속의 여인”에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주인공은 공중파 퀴즈쇼에 나간다. 본선까지는 무난히 나갔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한다. 방송의 위력은 대단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서 전화와 축하 문자를 받았다. 심지어는 별 친분관계가 없는 데면데면한 사람들까지도 그를 알아보았다. 그때 문득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벽 속의 여인”으로부터… (난 갑자기 애틋한 혹은 야릇한 연애의 감정을 느꼈다. 한동안 느낄 수 없었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그들은 홍대 부근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고 몇 번의 데이트를 거쳐 완전한 연인이 된다.

실제로 “벽 속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건 주인공뿐만 아니었다. 나도 그녀에게 푹 빠졌다. 마치 20대로 돌아가 흠모하는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앞 둔 사람처럼 들떠있었다. 그 여인이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았고 내 스마트폰에 카톡을 날려줄 것만 같았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책장이 넘어가 결말로 가는 게 아쉬웠다. 이별이 싫었다.

이건 일종의 데자뷔다. 20대를 가슴 설레게 했던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후로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풋풋한 사랑과 연인이 되어가며 나누었던 대화, 말투, 몸짓 하나하나 내 기억 속에 숨어있던 감정을 들춰내고 있었다. 언제 이 작가가 내 맘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이대로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고 싶은 심정은 TV드라마 미니시리즈에 해피엔드를 요구하는 시청자와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퀴즈쇼라는 제목이 왜 나왔겠는가, 작가는 연애질만 하게 그냥 두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다. 엄청난 사건이 말이다. 이 책을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면 전기는 평범한 일상에서 사랑의 달콤함을, 반면 후기는 색다른 경험과 사건이 발생하며 독자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결말은…궁금한가? 나처럼 애틋한 감정을 취해 살고 싶다면 전기에서 책을 덮어야 한다. 궁금증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끝까지 읽어라. 현실로 돌아오는 빨간약을 먹게 될거다. 미스테리한 사건속에서 혼돈을 겪으면서 현실로 돌아 온다. 그러나 문득 느끼게 될 것이다. “벽 속의 여인”이 어느새 나의 마음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는 것을.

작가 김영하를 만나고 싶다. 이렇게 애잔한 감정을 느끼게 해 놓고, 왜 갑자기 빼앗아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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