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3월 2012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스토리k에서 읽은 첫 번째 전자책이다. 최대한 재미있게 완독할 수 있는 책을 고르고 골랐는데, 결과적으로는 대충 훑어보는 선에서 끝이났다.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이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매끄럽지 않은 번역에 이물감을 느꼈다.. 생뚱맞은 감정표현에 영어식 문장구조를 여과없이 그대로 한국어로 옮긴 점, 문학적 감성이 전혀 묻어나지 않은 무미건조한 번역이었다.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다. 그 나라의 문화와 감정에 맞춰서 적절하게 변환해야 한다. 번역이전에 문학아닌가…

소송의 주인공은 K다. K는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소송을 당한다. 그 소송이 왜 일어났는지 무엇때문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냥 소송을 당했고, 주변 인물들도 그 소송에 대해 소문으로 듣고 알게 되면서 걱정한다. K도 점점 그 이상한 설정에 갇힌다. 처음에는 무작정 들이닥친 법조 인물의 등장에 재미가 있지만, 그 뒤로는 계속 소송을 준비하는 K와 주변 인물들간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좀 많이 지루했다. 건조한 번역때문에 내 눈물이 말라버릴 것만 같았다.

왜 이 작품을 고전이라고 했을까? 어떤 면에서 이걸 높이 평가하는 것일까? 유작이라서? 미완성 원고라서?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지만 별 뾰족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재미없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런데 만약 소송을 당해본적이 있다면… ”

이 소설은 달리 보이지 않을까?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에 소송에 대한 아무 느낌이 없으리라. 하지만 소송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K의 심리상태, 주변의 인물들의 과도한 설정등이 이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떤 소송을 당한다면, 알수없는 초조함이 깔릴것이고 귀찮은 생각이 들 것이다. 또한 어쩔 수 없이 법정에 서야하는 나약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게 작가의 의도는 아닐까. 인간은 원래부터가 나약한 존재다. 또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뭐 이런걸 알려주고 싶지 않았을까.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

김영하 때문이다.

그의 팟캐스트에서 [삼풍백화점]이란 섬뜩한 제목의 단편을 낭독하는 바람에 정이현이란 작가를 알게 되었다. “삼풍”이란 말만 들어도, 만약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하는 생각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망각의 프로세스를 수행해 왔었다. 그런데 김영하가 그걸 긁었다.

[삼풍백화점]은 그 당시 백수로 지내고 있는 주인공과 삼품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등장한다.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하지 못한 주인공과 반대로 고등학교만 나왔지만,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친구 간의 얘기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백화점에 일하는 친구가 일손이 달려 주인공에게 도와달라고 하면서 발생한다. 삼풍백화점의 붕괴처럼 주인공은 난처한 처지에 서게 되고 친구와의 갈등은 최고조가 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삼품백화점이 붕괴된다. 시간 단위로 묘사된 상황설명이 너무 실감나서 초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김영하의 소개로 알게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이현의 소설에 김영하의 색채가 담겨있다. 대화체의 문장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작가란 자신의 살아온 삶의 흔적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도 그랬고 정이현은 더 세세하게 과거를 사진처럼 기억해내며 스토리를 엮어간다. 삼풍백화점이야 그렇게 오래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당시의 유행들,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타인의 고독] 단편은 이혼한 전 아내와의 갈등, 짜증 나는 감정을 급박한 사건과 연결짓는다. [오늘의 거짓말]의 첫 단편인데, 독자를 끄는 매력이 있다. 이런 상상을 할 때, 작가의 마음은 어떠할까? 독자들이 느끼는 등장인물에 대한 짜증과 공허함을 작가도 느끼고 있을까? 아마 수도 없이 내면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상력의 실마리가 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완전한 상상력만으로 쓰진 않았을거고, 아마 주위에 이혼한 친구들 중에 실제 이와 비슷한 경험을 들었으리라. 애완견의 양육을 놓고 이혼남녀가 다투는 모습은 흔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할뿐만아니라 작가도 실제로 봤을거다. 다만, 급박하게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통해 모든 갈등이 풀어지는 건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교통사고를 내고 당황한 나머지 빠르게 엑셀을 밟아 위기를 모면했던 경험이 있었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지만 직업상 이걸 그냥 두지 못했으리라.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을 멀리하고자 엉뚱한 상상력을 끌어들여 이혼한 부부를 등장시키고 거기에 애완견을 놓고 갈등을 부추긴다. 오히려 교통사고는 갈등을 해결하는 사건으로 처리한다. 작가는 꺼림칙한 기억에서 탈출한다. (요거는 나의 상상. ^^)

오늘 정이현의 트위터를 팔로우 했다. 나이도 한 살 밖에 차이가 안 나고 감성코드도 맞다. 기회가 되는대로 그녀의 작품을 읽어볼 생각이다. 장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장편과 단편은 읽으면 읽을수록 많이 다르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나, [퀴즈쇼]처럼 초반에 독자의 관심을 끌었던 조그만 사건들이 복선의 구실을 하여 마지막까지 기대감을 높여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허무한 결말로 끝을 내는 예도 있겠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다.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희열을 느낀다. 또한 기대감이 충만해지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그게 바로 장편의 매력이다.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 – 김수영

“춤을 출 때 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 짜릿한 느낌을 잊지 못하고 매일 무대에 서요. 그러고 나면 변호사로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욱 당당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나는 뭐든지 한번 시작하면 100퍼센트가 아닌 120퍼센트를 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취미생활에 불과해요.
….
그 시간을 내기 위해 회사에서 더 집중해 일하게 되거든요.”

저자가 여행 중에 만난 변호사에 대한 글이다. “120퍼센트”, 이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취미라고 해서 설렁설렁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120퍼센트로 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취미 생활을 120퍼센트로 하기 위해서는 정규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허투루 웹서핑을 한다거나 단순 반복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뺏긴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 업무는 개선하고 그 시간만큼 취미활동에 투여해야 한다. 그런 습관이 배기면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의 작가 그레그 레이드는 “꿈을 날짜와 함께 적어놓으면 목표가 되고, 목표를 잘게 나누면 계획이 된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현실이 된다.”고 했다. ”

계획을 글로 적어 놓지 않으면 십중팔구 사라진다. 아니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게 된다. 무조건 적어야 하고, 자주 보면서 상기시켜야 한다. 하루에 한 번은 봐야 목표를 까먹지 않는다. 달성일을 설정하는 것만으로 적당한 긴장감을 주어 두뇌 활성화가 되고 행동도 이에 맞춰 좋은 방향으로 변한다. 단순히 목표를 적어놓고 자주 보는 것만으로 이룰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그런데 왜 하지 않는가. 알면서도 당장은 불편함이 없고 또 귀찮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계획하든지 가장 중요한 건 당장 시작한다는 마음이다. 내일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또 까먹고 말 것이다. 사람은 그런 면에서 참 단순하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을 설레게 하는 과감한 목표를 잡고 묵묵히 그 길을 밟아가는 사람들이다. 중간에 재미없거나 지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기어서라도 가는 사람이 승리자가 된다. 방황하지 않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를 적어서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한다.

저자 김수영은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가정형편이 안 좋았고, 학교 선생들의 자질 부족으로 왕따에 가출까지 하면서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목표를 종이에 적고, 상상하는 순간부터 인생은 달라졌다. 목표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어 자신을 채찍질했고,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들이 하나하나씩 이루어졌다.

책을 읽다 보면 한비야의 여행기를 한 권에 모아 놓은 것처럼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녀의 액티브한 삶이 무작정 부럽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결혼한다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를 보내는 자식을 키운다는 건, 해보지 않고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각자의 삶이 있다. 김수영은 김수영 나름대로 나는 나대로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제일 나쁜 건 남의 인생을 무작정 따라가는 거다. 아이패드를 따라 했던 수많은 짝퉁 태블릿이 몰락하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있지 않으면 말짱 소용이 없다.

김수영의 피나는 노력은 정말 존경스럽다. 생활비와 꿈을 이루기 위해 알바와 학업을 힘들게 이어가면서도 매일 독서를 빠뜨리지 않았다는 점은 닮고 싶다. 성공을 떠나 사람 되게 살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지식을 쌓아야 한다. 음악, 미술, 운동을 골고루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봐도 이런 사람이 재미있고 배울 점이 있지 않겠는가. 기본 지식이 많이 쌓여 있으면 배우는 속도가 빨라진다.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다르니 성장의 속도도 달라지는 것이다.

인생의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만족과 보람은 무엇일까? 정신적인 성장을 통한 자기 희열, 이게 정답이 아닐까.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갈 때, 지식과 예술적 감성이 온몸에 가득할 때 비로소 인생이 즐거워지지 않겠는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 김영하, 그리고 나의 단편

김영하가 2010년에 발표한 단편집이다. 단편의 형식 파괴가 눈에 띈다.
2페이지 짜리 단편인 [명예살인]이 가장 특출나다. 단편이란 게 이렇게 짧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정말 간단하게 기승전결을 만들었다. 짧은 글에 살을 붙여가는 것이 단편이란걸 보여주기라도 하는거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퀴즈쇼]다. 동명 장편 소설이 2007년에 문학동네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 단편이 2010년에 나왔으니 장편을 다시 단편으로 각색한 것이다. 퀴즈쇼라는 주요한 흐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어 나오는데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런 식으로 장·단편을 같은 주제로 쓴 소설은 처음 본다.

장편 퀴즈쇼는 판타지가 들어가 있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과 초라한 20대의 현실을 표현한다. 장편 퀴즈쇼에 홀딱 빠진 건 어쩌면 나도 아직 20대의 감성을 지니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설렘을 느껴볼 수 있는 퀴즈쇼(장편)가 좋았다. 반면, 단편은 단편답게 한 사건에 집중하며 최대한 재미를 끌어 올린다. 허무한 결말은 비슷하다.

명예살인의 줄거리는 피부가 엄청나게 고운 20대의 여인이 한 피부과에 취직한다. 대출을 받아 개원한 병원은 얼굴마담 역할만 하는 피부 고운 여인 때문인지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피부좋은 여자의 얼굴에 여드름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온 얼굴에 번져 버린다. 그 많던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기고 그 여자는 사표를 제출한다. 그리고 며칠 뒤 자살한다. 끝이다.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얼마 전에 애가 감기 증세로 힘들어해서 자세히 봤더니 혀 속이 오돌오돌 돌기가 쏟아 있었다. 자식이긴 하지만 솔직히 파충류의 혓바닥처럼 징그러웠다. 다행히 열은 없고 잘 먹었다. 명예살인을 읽고 나서 만약, 김태희 같은 최고 미인(나는 동의 안 하지만…)의 혓바닥이 나의 자식처럼 돌기가 솟아있다면 어떠할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단편으로 만들면,

봄 햇살처럼 빛나는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백수로 지냈지만 아름다운 미모에 홀린 많은 남자가 매일 현관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식사 한끼를, 선물을 받아주기를, 짧은 데이트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해 줄 듯 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돌아본다. “내가 그렇게 예쁜가?” 어느새 그녀는 자만에 빠진다. 남자들을 일회용 물티슈처럼 다루기 시작한다. 그녀에 의해 쓰여진 남자들은 몸과 마음을 모두 잃고 백수가 되거나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너 매몰차졌으며, 이 순간들을 즐기며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훤칠하고 고급 승용차에 고가의 명품을 매일같이 선물하는 재벌 2세와 결혼하기로 한다. 명품 쇼핑하느라 입술에 트라블이 생기기도 했다. 삶은 고통이 아니라 쾌락이었고 너무나 쉽게 모든 걸 얻을 수 있었다. 결혼식이 거행되는 날 흰색 드레스는 에메랄드처럼 빛나고 그녀의 미모는 더 돋보였다. 그런데 조금씩 입속이 아파왔다. 아침에 김을 싸 먹다가 볼살을 씹었는데 그게 부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리에 열도 조금 났다. 긴장해서 그러려니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쌀밥을 먹는데 현미를 먹는 듯 알이 너무 거칠었다. 남편에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남편은 숟가락을 떨어뜨린다.

“…어…당신 혀가….”

남편은 혐오스러운 걸 본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상황파악이 된 듯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리고 혀를 내민다.

“아~악~…”

핑크빛 아름다움을 비춰야 할 혀가 흰색 돌기들이 무섭게 돋아 있었다. 얼른 고개를 돌린다. 다시 거울 보기가 두려웠다. 혹시 꿈인가 해서 자기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현실이었다. 다시 거울을 본다. 아름다운 미모는 그대로였지만, 혀를 내미는 순간은 한 마리의 개구리의 그것과도 같았다. 오돌오돌한 돌기에 파리가 돌돌 말려 꼼짝없이 입속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남편은 아내를 위로한다. 괜찮아 질 거야. 좋아 질 거야.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봐.
아내는 고개를 끄떡이며 눈으로는 미안함을 표한다. 첫 날밤인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녀의 혀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돌기가 더 돋았고 성이 나 있었다. 이젠 밥도 모래알처럼
입속에서 돌아다녔다. 식사를 더는 할 수 없었다. 서서히 말라갔다. 한 달이 지났다. 변화가 없다. 남편과 각방을 쓴지도 벌써 한참이다. 3개월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남편은 외박이 잦았졌고 눈을 마주치는 걸 피했다.

달 밝은 보름에 베란다에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일회용품처럼 사용하고 버렸던 남자들을 생각한다.
혓바닥에 살며시 손가락을 넣어본다.
돌기가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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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영향인지 판타지와 비극에 집중된다. 삶은 고통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고통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든 소설 속의 가상세계가 되었건 중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