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

김영하 때문이다.

그의 팟캐스트에서 [삼풍백화점]이란 섬뜩한 제목의 단편을 낭독하는 바람에 정이현이란 작가를 알게 되었다. “삼풍”이란 말만 들어도, 만약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하는 생각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망각의 프로세스를 수행해 왔었다. 그런데 김영하가 그걸 긁었다.

[삼풍백화점]은 그 당시 백수로 지내고 있는 주인공과 삼품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등장한다.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하지 못한 주인공과 반대로 고등학교만 나왔지만,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친구 간의 얘기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백화점에 일하는 친구가 일손이 달려 주인공에게 도와달라고 하면서 발생한다. 삼풍백화점의 붕괴처럼 주인공은 난처한 처지에 서게 되고 친구와의 갈등은 최고조가 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삼품백화점이 붕괴된다. 시간 단위로 묘사된 상황설명이 너무 실감나서 초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김영하의 소개로 알게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이현의 소설에 김영하의 색채가 담겨있다. 대화체의 문장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작가란 자신의 살아온 삶의 흔적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도 그랬고 정이현은 더 세세하게 과거를 사진처럼 기억해내며 스토리를 엮어간다. 삼풍백화점이야 그렇게 오래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당시의 유행들,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타인의 고독] 단편은 이혼한 전 아내와의 갈등, 짜증 나는 감정을 급박한 사건과 연결짓는다. [오늘의 거짓말]의 첫 단편인데, 독자를 끄는 매력이 있다. 이런 상상을 할 때, 작가의 마음은 어떠할까? 독자들이 느끼는 등장인물에 대한 짜증과 공허함을 작가도 느끼고 있을까? 아마 수도 없이 내면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상력의 실마리가 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완전한 상상력만으로 쓰진 않았을거고, 아마 주위에 이혼한 친구들 중에 실제 이와 비슷한 경험을 들었으리라. 애완견의 양육을 놓고 이혼남녀가 다투는 모습은 흔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할뿐만아니라 작가도 실제로 봤을거다. 다만, 급박하게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통해 모든 갈등이 풀어지는 건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교통사고를 내고 당황한 나머지 빠르게 엑셀을 밟아 위기를 모면했던 경험이 있었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지만 직업상 이걸 그냥 두지 못했으리라.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을 멀리하고자 엉뚱한 상상력을 끌어들여 이혼한 부부를 등장시키고 거기에 애완견을 놓고 갈등을 부추긴다. 오히려 교통사고는 갈등을 해결하는 사건으로 처리한다. 작가는 꺼림칙한 기억에서 탈출한다. (요거는 나의 상상. ^^)

오늘 정이현의 트위터를 팔로우 했다. 나이도 한 살 밖에 차이가 안 나고 감성코드도 맞다. 기회가 되는대로 그녀의 작품을 읽어볼 생각이다. 장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장편과 단편은 읽으면 읽을수록 많이 다르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나, [퀴즈쇼]처럼 초반에 독자의 관심을 끌었던 조그만 사건들이 복선의 구실을 하여 마지막까지 기대감을 높여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허무한 결말로 끝을 내는 예도 있겠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다.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희열을 느낀다. 또한 기대감이 충만해지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그게 바로 장편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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