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 – 김수영

“춤을 출 때 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 짜릿한 느낌을 잊지 못하고 매일 무대에 서요. 그러고 나면 변호사로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욱 당당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나는 뭐든지 한번 시작하면 100퍼센트가 아닌 120퍼센트를 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취미생활에 불과해요.
….
그 시간을 내기 위해 회사에서 더 집중해 일하게 되거든요.”

저자가 여행 중에 만난 변호사에 대한 글이다. “120퍼센트”, 이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취미라고 해서 설렁설렁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120퍼센트로 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취미 생활을 120퍼센트로 하기 위해서는 정규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허투루 웹서핑을 한다거나 단순 반복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뺏긴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 업무는 개선하고 그 시간만큼 취미활동에 투여해야 한다. 그런 습관이 배기면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의 작가 그레그 레이드는 “꿈을 날짜와 함께 적어놓으면 목표가 되고, 목표를 잘게 나누면 계획이 된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현실이 된다.”고 했다. ”

계획을 글로 적어 놓지 않으면 십중팔구 사라진다. 아니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게 된다. 무조건 적어야 하고, 자주 보면서 상기시켜야 한다. 하루에 한 번은 봐야 목표를 까먹지 않는다. 달성일을 설정하는 것만으로 적당한 긴장감을 주어 두뇌 활성화가 되고 행동도 이에 맞춰 좋은 방향으로 변한다. 단순히 목표를 적어놓고 자주 보는 것만으로 이룰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그런데 왜 하지 않는가. 알면서도 당장은 불편함이 없고 또 귀찮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계획하든지 가장 중요한 건 당장 시작한다는 마음이다. 내일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또 까먹고 말 것이다. 사람은 그런 면에서 참 단순하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을 설레게 하는 과감한 목표를 잡고 묵묵히 그 길을 밟아가는 사람들이다. 중간에 재미없거나 지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기어서라도 가는 사람이 승리자가 된다. 방황하지 않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를 적어서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한다.

저자 김수영은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가정형편이 안 좋았고, 학교 선생들의 자질 부족으로 왕따에 가출까지 하면서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목표를 종이에 적고, 상상하는 순간부터 인생은 달라졌다. 목표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어 자신을 채찍질했고,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들이 하나하나씩 이루어졌다.

책을 읽다 보면 한비야의 여행기를 한 권에 모아 놓은 것처럼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녀의 액티브한 삶이 무작정 부럽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결혼한다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를 보내는 자식을 키운다는 건, 해보지 않고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각자의 삶이 있다. 김수영은 김수영 나름대로 나는 나대로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제일 나쁜 건 남의 인생을 무작정 따라가는 거다. 아이패드를 따라 했던 수많은 짝퉁 태블릿이 몰락하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있지 않으면 말짱 소용이 없다.

김수영의 피나는 노력은 정말 존경스럽다. 생활비와 꿈을 이루기 위해 알바와 학업을 힘들게 이어가면서도 매일 독서를 빠뜨리지 않았다는 점은 닮고 싶다. 성공을 떠나 사람 되게 살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지식을 쌓아야 한다. 음악, 미술, 운동을 골고루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봐도 이런 사람이 재미있고 배울 점이 있지 않겠는가. 기본 지식이 많이 쌓여 있으면 배우는 속도가 빨라진다.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다르니 성장의 속도도 달라지는 것이다.

인생의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만족과 보람은 무엇일까? 정신적인 성장을 통한 자기 희열, 이게 정답이 아닐까.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갈 때, 지식과 예술적 감성이 온몸에 가득할 때 비로소 인생이 즐거워지지 않겠는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 김영하, 그리고 나의 단편

김영하가 2010년에 발표한 단편집이다. 단편의 형식 파괴가 눈에 띈다.
2페이지 짜리 단편인 [명예살인]이 가장 특출나다. 단편이란 게 이렇게 짧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정말 간단하게 기승전결을 만들었다. 짧은 글에 살을 붙여가는 것이 단편이란걸 보여주기라도 하는거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퀴즈쇼]다. 동명 장편 소설이 2007년에 문학동네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 단편이 2010년에 나왔으니 장편을 다시 단편으로 각색한 것이다. 퀴즈쇼라는 주요한 흐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어 나오는데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런 식으로 장·단편을 같은 주제로 쓴 소설은 처음 본다.

장편 퀴즈쇼는 판타지가 들어가 있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과 초라한 20대의 현실을 표현한다. 장편 퀴즈쇼에 홀딱 빠진 건 어쩌면 나도 아직 20대의 감성을 지니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설렘을 느껴볼 수 있는 퀴즈쇼(장편)가 좋았다. 반면, 단편은 단편답게 한 사건에 집중하며 최대한 재미를 끌어 올린다. 허무한 결말은 비슷하다.

명예살인의 줄거리는 피부가 엄청나게 고운 20대의 여인이 한 피부과에 취직한다. 대출을 받아 개원한 병원은 얼굴마담 역할만 하는 피부 고운 여인 때문인지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피부좋은 여자의 얼굴에 여드름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온 얼굴에 번져 버린다. 그 많던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기고 그 여자는 사표를 제출한다. 그리고 며칠 뒤 자살한다. 끝이다.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얼마 전에 애가 감기 증세로 힘들어해서 자세히 봤더니 혀 속이 오돌오돌 돌기가 쏟아 있었다. 자식이긴 하지만 솔직히 파충류의 혓바닥처럼 징그러웠다. 다행히 열은 없고 잘 먹었다. 명예살인을 읽고 나서 만약, 김태희 같은 최고 미인(나는 동의 안 하지만…)의 혓바닥이 나의 자식처럼 돌기가 솟아있다면 어떠할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단편으로 만들면,

봄 햇살처럼 빛나는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백수로 지냈지만 아름다운 미모에 홀린 많은 남자가 매일 현관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식사 한끼를, 선물을 받아주기를, 짧은 데이트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해 줄 듯 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돌아본다. “내가 그렇게 예쁜가?” 어느새 그녀는 자만에 빠진다. 남자들을 일회용 물티슈처럼 다루기 시작한다. 그녀에 의해 쓰여진 남자들은 몸과 마음을 모두 잃고 백수가 되거나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너 매몰차졌으며, 이 순간들을 즐기며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훤칠하고 고급 승용차에 고가의 명품을 매일같이 선물하는 재벌 2세와 결혼하기로 한다. 명품 쇼핑하느라 입술에 트라블이 생기기도 했다. 삶은 고통이 아니라 쾌락이었고 너무나 쉽게 모든 걸 얻을 수 있었다. 결혼식이 거행되는 날 흰색 드레스는 에메랄드처럼 빛나고 그녀의 미모는 더 돋보였다. 그런데 조금씩 입속이 아파왔다. 아침에 김을 싸 먹다가 볼살을 씹었는데 그게 부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리에 열도 조금 났다. 긴장해서 그러려니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쌀밥을 먹는데 현미를 먹는 듯 알이 너무 거칠었다. 남편에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남편은 숟가락을 떨어뜨린다.

“…어…당신 혀가….”

남편은 혐오스러운 걸 본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상황파악이 된 듯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리고 혀를 내민다.

“아~악~…”

핑크빛 아름다움을 비춰야 할 혀가 흰색 돌기들이 무섭게 돋아 있었다. 얼른 고개를 돌린다. 다시 거울 보기가 두려웠다. 혹시 꿈인가 해서 자기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현실이었다. 다시 거울을 본다. 아름다운 미모는 그대로였지만, 혀를 내미는 순간은 한 마리의 개구리의 그것과도 같았다. 오돌오돌한 돌기에 파리가 돌돌 말려 꼼짝없이 입속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남편은 아내를 위로한다. 괜찮아 질 거야. 좋아 질 거야.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봐.
아내는 고개를 끄떡이며 눈으로는 미안함을 표한다. 첫 날밤인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녀의 혀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돌기가 더 돋았고 성이 나 있었다. 이젠 밥도 모래알처럼
입속에서 돌아다녔다. 식사를 더는 할 수 없었다. 서서히 말라갔다. 한 달이 지났다. 변화가 없다. 남편과 각방을 쓴지도 벌써 한참이다. 3개월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남편은 외박이 잦았졌고 눈을 마주치는 걸 피했다.

달 밝은 보름에 베란다에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일회용품처럼 사용하고 버렸던 남자들을 생각한다.
혓바닥에 살며시 손가락을 넣어본다.
돌기가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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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영향인지 판타지와 비극에 집중된다. 삶은 고통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고통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든 소설 속의 가상세계가 되었건 중요치 않다.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 이상원

책 제목에 끌려 무작정 주문했다.

글 쓰는 법을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또 이왕이면 최고의 수재들만 가는 서울대 수업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어보고 싶었다. 대학교에 갓 들어가 첫 수업을 듣는 설렘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이 책은 글 잘쓰는 법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럼 도대체 뭘 알려 준다는 거지?’ 좀 더 읽어보니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 즉 교수법에 대한 얘기를 한다고 한다. 이것만을 다루기엔 책이 너무 두꺼운 거 아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고 봤는데 정말 글 잘 쓰는 법은 나오지 않았다. 숨겨둔 보물을 찾듯 속속들이 들여다봤지만, 단지 수업 진행방식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둘 뿐이었다. 책 후미는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의 글로 채워졌다.

좋은점은, 서울대에서 최고 인기강좌로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의 진행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교수법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별 영양가가 없겠지만, 이걸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응용할 마음이 있다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세세한 주별 일정이 나와 있고 수업의 진행, 평가방식, 과제(글 쓰고, Feedback)에 대한 운영 방식도 흥미롭다.

수업의 주체는 교수가 아닌 학생이다. 교수는 원활한 수업의 진행을 도와주는 역할만 할 뿐, 나머지는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끼리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한 한기 동안 세 가지 주제로 글을 써야 한다.

첫째는 “나를 소개하는 글”, 자기를 알려 친밀함을 쌓으며 글쓰기 워밍업을 한다.

둘째는 “감상 에세이”, 책, 영화, 공연, 음악, 여행 등 대상을 잡아 글을 쓰게 된다. 재치있는 글이 많이 나오며 유용한 정보도 공유된다.

마지막 “주제 에세이”, 이전보다 깊이가 더해지면서 약간 무거운 사안부터 전문적인 자료 조사가 필요한 것까지 모두 포함된다. 글쓴이의 생각 정리가 필요하고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주제 에세이에 이르면 거의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 못지않은 필력을 보여주는 학생들도 나타난다. 또 자신 내면의 깊숙한 얘기, 가족사를 주제와 연관 지어 솔직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글을 통해 참된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것만으로 엄청난 성과다. 이 세 가지 주제를 진행하는 동안 서로의 글을 보며 댓글을 달고 토론한다.

개인적으로 이 방식을 사내에 적용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일과 맞게 IT 분야의 인문학 글쓰기 모임이 괜찮을 것 같다. 적당한 인원으로 팀을 구성하고 자기 소갯글부터 시작해서 감상에세이 그리고 IT 분야의 전문 주제 에세이로 진행을 하면 매끄러울 것 같다. 이 모임의 목적은 사실 IT의 전문성을 키우는 건 아니다. 일종의 글을 통한 치유와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는 데 있다. 전문지식의 습득은 부차적이다. 또 회사 윗선을 위한 생색내기다.

이 강좌가 최고 인기 강좌가 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로 참여다. 글을 쓰는 동안, 상대방의 글에 댓글을 다는 동안, 토론하며 의견을 교환하면서 본인 스스로 느끼고 성장하는 걸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퀴즈쇼 – 김영하

사람의 감정은 참 묘하다.

작가 김영하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이 사람과 교감 하고 있다는 느끼면서부터다. 작품 전체를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김영하 컬렉션” 묶음 책을 사서 나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부터 시작했다.

단편이란 게 원래 분량 관계로 어떤 사건에 재미를 배가시키거나, 반대로 허무하고 허황된 결말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듯한 작가의 필력에 책을 읽는 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듯 편안했다. 또 그의 소설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사랑과 연애 혹은 섹스가 메마른 삶을 신선하게 적셔주었다. 그러나 작가는 절정에서 갑자기 나락으로 독자를 떨어뜨려 허우적거리게 하고 만다. 허무하게. 짓궂다.

다음으로 장편을 읽었다. 장편 4권 중에 가장 얇은 순으로 순서를 정했다. 금세 지쳐서 질릴까 봐서다. “아랑은 왜”, “검은 꽃”, “빛의 제국” 그리고 가장 두꺼운 “퀴즈쇼”까지 거침없이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과 글발에 감동을 하며 나도 이런 작품 하나 쓸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마지막 작품인 “퀴즈쇼”에 대해 얘기를 좀 더 해보자. 백수인 20대 후반의 남자는 갑작스러운 어머니 같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로 삶이 바뀌기 시작한다. 늘 이용만 당하던 애인과 결별하고 할머니가 진 빚 때문에 사는 집에서 쫓겨나 고시원에서 생활한다.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잘린다. 수중에 돈도 없어서 다음 달 고시원 월세도 치를 수 없다. 그나마 유일한 낙은 인터넷 채팅사이트의 퀴즈방이다. 어릴 적부터 책이며 잡다한 지식을 많이 쌓아서 퀴즈 푸는 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벽 속의 여인”이란 아이디를 쓰는 상당한 실력자가 나타나 퀴즈방을 이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벽 속의 여인”에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주인공은 공중파 퀴즈쇼에 나간다. 본선까지는 무난히 나갔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한다. 방송의 위력은 대단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서 전화와 축하 문자를 받았다. 심지어는 별 친분관계가 없는 데면데면한 사람들까지도 그를 알아보았다. 그때 문득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벽 속의 여인”으로부터… (난 갑자기 애틋한 혹은 야릇한 연애의 감정을 느꼈다. 한동안 느낄 수 없었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그들은 홍대 부근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고 몇 번의 데이트를 거쳐 완전한 연인이 된다.

실제로 “벽 속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건 주인공뿐만 아니었다. 나도 그녀에게 푹 빠졌다. 마치 20대로 돌아가 흠모하는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앞 둔 사람처럼 들떠있었다. 그 여인이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았고 내 스마트폰에 카톡을 날려줄 것만 같았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책장이 넘어가 결말로 가는 게 아쉬웠다. 이별이 싫었다.

이건 일종의 데자뷔다. 20대를 가슴 설레게 했던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후로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풋풋한 사랑과 연인이 되어가며 나누었던 대화, 말투, 몸짓 하나하나 내 기억 속에 숨어있던 감정을 들춰내고 있었다. 언제 이 작가가 내 맘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이대로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고 싶은 심정은 TV드라마 미니시리즈에 해피엔드를 요구하는 시청자와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퀴즈쇼라는 제목이 왜 나왔겠는가, 작가는 연애질만 하게 그냥 두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다. 엄청난 사건이 말이다. 이 책을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면 전기는 평범한 일상에서 사랑의 달콤함을, 반면 후기는 색다른 경험과 사건이 발생하며 독자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결말은…궁금한가? 나처럼 애틋한 감정을 취해 살고 싶다면 전기에서 책을 덮어야 한다. 궁금증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끝까지 읽어라. 현실로 돌아오는 빨간약을 먹게 될거다. 미스테리한 사건속에서 혼돈을 겪으면서 현실로 돌아 온다. 그러나 문득 느끼게 될 것이다. “벽 속의 여인”이 어느새 나의 마음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는 것을.

작가 김영하를 만나고 싶다. 이렇게 애잔한 감정을 느끼게 해 놓고, 왜 갑자기 빼앗아 가는지.

치유의 글쓰기 – 세퍼드 코미나스

인물 스케치를 배운지 벌써 반년이 다되어 간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리듬을 깨어보고자 시작한 취미생활이 어느새 나의 삶의 깊숙한 곳에 들어왔다. 한 사람을 제대로 그리는 데는 약 10시간 정도 걸리지만, 뭐랄까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에 순응해서 다람쥐 쳇바퀴를 돌았으면 맛보지 못했을 달콤함이다.

글쓰기도 이런 게 아닐까. 조금씩 자기를 알아가는 느낌, 자신이 쓴 글에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글쓰기에 빠져들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정신없이 쓰게 될 것이다. 난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치유의 글쓰기를 동시에 시작했다. 새벽 5시 10분에 일어나 졸리는 눈꺼풀을 비벼가며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20분만 쓰려고 했는데, 어느새 시계는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래전 아팠던 기억에서부터 시작해서 어제 직장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것들까지 나의 감정을 실어 적었다. 신기했다. 무료한 일상에 이렇게 적을게 많다는 게…

철저하게 자신만을 글쓰기를 해야 한다. 타인을 의식하는 순간 가식이 비집고 들어오고 진실은 사라진다. 글에 몰입할 수 없거니와 치유와는 거리가 멀게 된다. 하루 20분씩 최소한 90일간 지속적으로 수행하라. 시간으로 따지면 1,800분, 30시간이다. 절대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는다. 몇십 년간 치유하지 못했던 자신을 90일간의 트레이닝으로 그 발판을 잡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글쓰기의 시작은 온라인이나 워드 프로세스 같은 편집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노트를 이용해야 한다. 왜냐면, 이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포스트를 하나 올릴 때 드는 시간과 노력은 상당하다. 문법적인 오류부터, 글의 흐름, 논리, 교정을 손보다 보면 집중력과 흥미가 떨어진다.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지 말고 앞만 보고 써야 한다. 문법이 틀려도 문장이 이상해도 막 써내려가야 한다. 물론, 처음엔 개떡같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제가 되고 진정한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치유의 방법은 단순할수록 좋다. 새벽에 일어나 무작정 책상으로 걸어가서 졸리는 눈을 비비며 노트를 펼치면 된다. 무엇을 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타인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만의 글을 쓰고자 한다면 시시콜콜한 감정부터 오래전 아프거나 즐거웠던 기억들까지 하나 둘 떠올라 주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기분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글쓰기 로드맵 101 – 스티븐 테일러 골즈베리

이 책을 통해 작가가 하고픈 말은 글쓰기 두번째 법칙에 함축 되어 있다.

“글쓰기는 예술이라기보다 기술이다.”

누구나 훈련을 쌓고 연습을 하면 글쓰기를 익힐 수 있다.
글쓰기는 학습 곡선처럼 조금씩 나아지고 발전한다. 그런점에서는 스포츠와 다를 바 없다. 열심히 운동하면 그만큼 힘이 강해진다. 스포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신체가 지쳤을 때도 정신은 글쓰기 경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운동을 할 때처럼 글쓰기 기술을 연마해보자. 매일매일 글을 써보는 것이다.

글쓰기를 스포츠와 운동에 비유하며 반복과 인내가 결실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성역은 없다. 누근든 꾸준한 노력에 따라 멋진 글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들이 많다. 영어 공부에 관해 스포츠 선수들의 훈련방식을 도입하여 인기강사의 반열에 오른 사람도 있다. 요즘 개인적으로 배우는 인물 스케치 역시, 반복과 인내의 연속이다. 첫 수업시간에 강사가 했던 말이 “연필 스케치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연습을 통해 기술을 익히면 됩니다.”였다.

두번째 법칙의 마지막에 ‘매일매일 글을 써보는 것’이 눈에 띈다. 하루에 최소 10분이라도 생각을 가다듬고 글을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어떨때는 영감이 떠올라 한두 시간을 정신없이 써내려 갈 때도 있지만, 반면에 전혀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아예 이런 시간에 대해 잊어 버리기도 한다. 적당한 핑계를 댄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한 줄 아니 단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 어떻게 쓰란 말야.”

작가의 열다섯번째 법칙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

“무조건 쓴다.”

자유로운 글쓰기는 특정한 시기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든 기록하는 행위다.

그 목표는 종이에 뭔가를 적는 데 있다. 물론 쓰레기 같은 글이 나올 것이다.

초심자나 직업적 작가나 과정은 마찬가지다. 첫 단어부터 시작해 단어들을 하나씩 계속 붙여나가는 게 바로 글쓰기다.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초고를 완성하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소설가 브라이스 코트니는 성공의 비결을 ‘무거운 엉덩이’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저깊은 곳에 숨어 있던 영감들이 새록새록 올라올 것이다. 어떤 단어 하나 혹은 무심코 써내려간 문장들이 그런 감성을 자극할 것이다. 그러면 1시간이 마치 10분 처럼 짧게 느끼게 된다.

법칙 19는 글쓰기 원칙을 보여준다. 역시 반복과 관련된 내용이다.

개고는 여러 번 할수록 좋다.

원고는 적어도 세 번을 써야 한다.

초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다는 느낌으로 아주 빠르게 쓴다. 1차 개고에서는 더 밀도 있게 집중하면서 표현과 구문을 고쳐 문학적 분위기를 가미한다. 2차 개고에서는 머릿속에 막 떠오른 것처럼 읽히도록 만드는 데 주력한다.
신참 작가들은 세 번이 아니라 그 이상, 열 번은 쓸 필요가 있다. 경력이 붙고 글을 쓴 경험이 늘어날수록 남들의 마음에 드는 원고를 쉽게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전날밤에 감동적으로 쓴 연애편지를 다음날 아침에 보면 웃음과 유치함이 묻어나듯, 한번에 끝내려는 마음가짐은 좋지 않다. 오히려 한번에 끝내려고 하면 할수록 심적 부담감으로 인해 자유로운 글쓰기에 방해를 줄 뿐이다. 일단은 막 써야한다. 빠르게. 그리고 수정에 수정을 통해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음글을 읽어보자.

그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왜냐하면 안색이 초췌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어 더욱 어두웠다.

==> 그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안색이 초췌한 데다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접속를 남발할 경우에는 글이 쓸데없이 지저분해지기 마련이다. 군더더기를 없애야 한다.

필사의 원칙도 알려준다. 난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필사한 적이 있다. 2페이지를 필사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 나름 속도를 내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글씨체도 엉망이고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은 채 무심코 필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사는 천천히 하도록 한다. 구두점 하나까지 원본 그대로 베껴야 한다. 이 연습의 목적은 저자가 의도한 정신적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데 있다. 저자가 그 작품을 생산하는 데 투입한 물리적 운동을 정확하게 모방해보는 것이다.

빛의 제국 – 김영하

“짬짬이”

독서에 최대한 시간을 할애하려다 보니 출근해서 피시가 켜지는 10분, 점심 먹고 30~40분 동안 책을 본다. 아침에는 정신이 맑아서 머리에 잘 들어오는데, 밥을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져 책 보기가 쉽지 않다. 커피를 한잔하기도 하고 차에 가서 자일리톨 한 알을 가져와 씹어가며 잠을 쫓는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을 읽고 있다. 장편임에도 아직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서 괜찮긴 한데, 몽롱한 정신으로 읽었던 부분 때문에 스토리 연결이 원활치 않아서 그 부분을 다시 읽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짬짬이 독서의 단점인 것 같다. ^^

구성이 독특하다. 차례를 보면 “AM 07:00 …” 시작해서 “AM 07:00″으로 끝이 난다. 인기 있는 미드 “24”의 구성이 연상된다. 먼저, 맞벌이하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현실감이 있어서 공감 가는 부분도 많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볍고 밝은 드라마 한편이 될 거라는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인 기영이 회사에서 느닷없이 비밀 명령을 받는 부분부터는 급속하게 상황이 반전되며 김영하식 암울, 차가운 모드로 진입한다. ‘아..이제 엄청난 상상력이 펼쳐지겠구나…’

1992년 동방불패가 한창 흥행 돌풍을 일으킬 때로 돌아간다. 또 전설의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죽음도 나온다. 작가가 되려면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거나 기록해 둬야 하는 가보다.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하는지 아니면 익숙하게 자료를 찾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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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떨어진 남파간첩 이야기” 요즘 같은 시대에 간첩이란 용어가 무섭다기 보다는 낯설게 느껴진다. 오히려 무덤덤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재미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끈 떨어진 간첩은 뭔가 재미있는 사연이 있어 보인다. 점조직으로 움직이다 보니 중간에 한명이라도 끊기는 날에는 완전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기 시작하면 그들도 어쩔수 없는 가장들이 되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한다. 직업을 가져야하고 또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언제 무슨일이 갑자기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은 늦출 수 없다. 철저하게 혼자 그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한두 해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나면, 아무런 연락없이 마치 북에서조차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주인공 기영은 점 조직으로 구성된 남파간첩이다. 남한에서 대학을 나왔고 운동권에 가담했고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직장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던 어느날 지령이 떨어진다. 북으로 복귀하라는… 10년이나 끈 떨어진 채 살아오다가 뜬금없이 내려온 명령에 갈등한다. 한때 같이 운동권 출신이었던 아내 마리, 자식인 현미 그리고 자본주의에 익숙해져버린 자신의 사고방식에 흔들린다.

평범한 도시의 가장은 회사에 출근하여 한 통의 이상한 전화를 받으면서 그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남파간첩”. 기영이 의심 많은 사무실 직원을 따돌리는 장면, 지하철에서 용의주도하게 미행을 피할 때 느껴지는 긴장감과 스릴감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 와중에 기영의 아내인 마리는 권태기를 지나고 있다. 어느새부터 알게 된 20살 연하의 대학생을 만나며 욕구를 푼다. 김영하는 이런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 편의 포르노를 보듯 정밀하고 과감하게 등장 시킨다. 마리는 남편과 딸이 출근과 등교를 한 뒤 태연하게 젊은 애인에게 문자를 보내 점심약속을 한다. 초반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커피숍, 와인 삼겹살집을 거쳐 러브호텔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며 마침내 절정에 이른다. 기영의 가치관에 대한 갈등만큼 마리의 정사가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연주곡처럼 처음에는 조금 강하게 중간중간은 부드럽게 그리고 마지막 절정에선 몰아치듯 감정적인 사정을 유도한다.

김영하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은 사건들을 현실감있게 구성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강변북로에서 경주마들이 뛰어 다니는 장면이나 유키구라모토와 같은 유명한 음악가나 미술작품, 익숙한 장소와 사물을 직접 인용하여 허구인 소설에 사실을 접목한다.

아쉽다면 결말이다. 조금은 급조된 느낌이다. 기승전까지는 잘 이끌고 왔다가 결말에서는 갑자기 끈이 떨어진 간첩인양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무엇도 주지 않은 채 그냥 허무하게 끝이 난다. 오히려 마리가 젋은 애인과 그 애인의 친구와 모델로 향하는 거, 모텔에서의 디테일한 정사신이 뇌리에 더 깊이 박히는 듯 하다.

책장을 덮고 주위를 둘러본다. 지금 한창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 중에 끈 떨어진 불쌍한 인간이 있지는 않을까. 묵묵히 자기일을 열심히 하고 웬만해선 눈에 띄지 않는 사람… 그들이 간첩일까? 끈 떨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