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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 이상원

책 제목에 끌려 무작정 주문했다.

글 쓰는 법을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또 이왕이면 최고의 수재들만 가는 서울대 수업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어보고 싶었다. 대학교에 갓 들어가 첫 수업을 듣는 설렘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이 책은 글 잘쓰는 법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럼 도대체 뭘 알려 준다는 거지?’ 좀 더 읽어보니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 즉 교수법에 대한 얘기를 한다고 한다. 이것만을 다루기엔 책이 너무 두꺼운 거 아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고 봤는데 정말 글 잘 쓰는 법은 나오지 않았다. 숨겨둔 보물을 찾듯 속속들이 들여다봤지만, 단지 수업 진행방식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둘 뿐이었다. 책 후미는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의 글로 채워졌다.

좋은점은, 서울대에서 최고 인기강좌로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의 진행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교수법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별 영양가가 없겠지만, 이걸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응용할 마음이 있다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세세한 주별 일정이 나와 있고 수업의 진행, 평가방식, 과제(글 쓰고, Feedback)에 대한 운영 방식도 흥미롭다.

수업의 주체는 교수가 아닌 학생이다. 교수는 원활한 수업의 진행을 도와주는 역할만 할 뿐, 나머지는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끼리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한 한기 동안 세 가지 주제로 글을 써야 한다.

첫째는 “나를 소개하는 글”, 자기를 알려 친밀함을 쌓으며 글쓰기 워밍업을 한다.

둘째는 “감상 에세이”, 책, 영화, 공연, 음악, 여행 등 대상을 잡아 글을 쓰게 된다. 재치있는 글이 많이 나오며 유용한 정보도 공유된다.

마지막 “주제 에세이”, 이전보다 깊이가 더해지면서 약간 무거운 사안부터 전문적인 자료 조사가 필요한 것까지 모두 포함된다. 글쓴이의 생각 정리가 필요하고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주제 에세이에 이르면 거의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 못지않은 필력을 보여주는 학생들도 나타난다. 또 자신 내면의 깊숙한 얘기, 가족사를 주제와 연관 지어 솔직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글을 통해 참된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것만으로 엄청난 성과다. 이 세 가지 주제를 진행하는 동안 서로의 글을 보며 댓글을 달고 토론한다.

개인적으로 이 방식을 사내에 적용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일과 맞게 IT 분야의 인문학 글쓰기 모임이 괜찮을 것 같다. 적당한 인원으로 팀을 구성하고 자기 소갯글부터 시작해서 감상에세이 그리고 IT 분야의 전문 주제 에세이로 진행을 하면 매끄러울 것 같다. 이 모임의 목적은 사실 IT의 전문성을 키우는 건 아니다. 일종의 글을 통한 치유와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는 데 있다. 전문지식의 습득은 부차적이다. 또 회사 윗선을 위한 생색내기다.

이 강좌가 최고 인기 강좌가 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로 참여다. 글을 쓰는 동안, 상대방의 글에 댓글을 다는 동안, 토론하며 의견을 교환하면서 본인 스스로 느끼고 성장하는 걸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치유의 글쓰기 – 세퍼드 코미나스

인물 스케치를 배운지 벌써 반년이 다되어 간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리듬을 깨어보고자 시작한 취미생활이 어느새 나의 삶의 깊숙한 곳에 들어왔다. 한 사람을 제대로 그리는 데는 약 10시간 정도 걸리지만, 뭐랄까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에 순응해서 다람쥐 쳇바퀴를 돌았으면 맛보지 못했을 달콤함이다.

글쓰기도 이런 게 아닐까. 조금씩 자기를 알아가는 느낌, 자신이 쓴 글에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글쓰기에 빠져들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정신없이 쓰게 될 것이다. 난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치유의 글쓰기를 동시에 시작했다. 새벽 5시 10분에 일어나 졸리는 눈꺼풀을 비벼가며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20분만 쓰려고 했는데, 어느새 시계는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래전 아팠던 기억에서부터 시작해서 어제 직장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것들까지 나의 감정을 실어 적었다. 신기했다. 무료한 일상에 이렇게 적을게 많다는 게…

철저하게 자신만을 글쓰기를 해야 한다. 타인을 의식하는 순간 가식이 비집고 들어오고 진실은 사라진다. 글에 몰입할 수 없거니와 치유와는 거리가 멀게 된다. 하루 20분씩 최소한 90일간 지속적으로 수행하라. 시간으로 따지면 1,800분, 30시간이다. 절대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는다. 몇십 년간 치유하지 못했던 자신을 90일간의 트레이닝으로 그 발판을 잡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글쓰기의 시작은 온라인이나 워드 프로세스 같은 편집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노트를 이용해야 한다. 왜냐면, 이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포스트를 하나 올릴 때 드는 시간과 노력은 상당하다. 문법적인 오류부터, 글의 흐름, 논리, 교정을 손보다 보면 집중력과 흥미가 떨어진다.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지 말고 앞만 보고 써야 한다. 문법이 틀려도 문장이 이상해도 막 써내려가야 한다. 물론, 처음엔 개떡같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제가 되고 진정한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치유의 방법은 단순할수록 좋다. 새벽에 일어나 무작정 책상으로 걸어가서 졸리는 눈을 비비며 노트를 펼치면 된다. 무엇을 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타인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만의 글을 쓰고자 한다면 시시콜콜한 감정부터 오래전 아프거나 즐거웠던 기억들까지 하나 둘 떠올라 주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기분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글쓰기 로드맵 101 – 스티븐 테일러 골즈베리

이 책을 통해 작가가 하고픈 말은 글쓰기 두번째 법칙에 함축 되어 있다.

“글쓰기는 예술이라기보다 기술이다.”

누구나 훈련을 쌓고 연습을 하면 글쓰기를 익힐 수 있다.
글쓰기는 학습 곡선처럼 조금씩 나아지고 발전한다. 그런점에서는 스포츠와 다를 바 없다. 열심히 운동하면 그만큼 힘이 강해진다. 스포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신체가 지쳤을 때도 정신은 글쓰기 경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운동을 할 때처럼 글쓰기 기술을 연마해보자. 매일매일 글을 써보는 것이다.

글쓰기를 스포츠와 운동에 비유하며 반복과 인내가 결실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성역은 없다. 누근든 꾸준한 노력에 따라 멋진 글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들이 많다. 영어 공부에 관해 스포츠 선수들의 훈련방식을 도입하여 인기강사의 반열에 오른 사람도 있다. 요즘 개인적으로 배우는 인물 스케치 역시, 반복과 인내의 연속이다. 첫 수업시간에 강사가 했던 말이 “연필 스케치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연습을 통해 기술을 익히면 됩니다.”였다.

두번째 법칙의 마지막에 ‘매일매일 글을 써보는 것’이 눈에 띈다. 하루에 최소 10분이라도 생각을 가다듬고 글을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어떨때는 영감이 떠올라 한두 시간을 정신없이 써내려 갈 때도 있지만, 반면에 전혀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아예 이런 시간에 대해 잊어 버리기도 한다. 적당한 핑계를 댄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한 줄 아니 단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 어떻게 쓰란 말야.”

작가의 열다섯번째 법칙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

“무조건 쓴다.”

자유로운 글쓰기는 특정한 시기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든 기록하는 행위다.

그 목표는 종이에 뭔가를 적는 데 있다. 물론 쓰레기 같은 글이 나올 것이다.

초심자나 직업적 작가나 과정은 마찬가지다. 첫 단어부터 시작해 단어들을 하나씩 계속 붙여나가는 게 바로 글쓰기다.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초고를 완성하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소설가 브라이스 코트니는 성공의 비결을 ‘무거운 엉덩이’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저깊은 곳에 숨어 있던 영감들이 새록새록 올라올 것이다. 어떤 단어 하나 혹은 무심코 써내려간 문장들이 그런 감성을 자극할 것이다. 그러면 1시간이 마치 10분 처럼 짧게 느끼게 된다.

법칙 19는 글쓰기 원칙을 보여준다. 역시 반복과 관련된 내용이다.

개고는 여러 번 할수록 좋다.

원고는 적어도 세 번을 써야 한다.

초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다는 느낌으로 아주 빠르게 쓴다. 1차 개고에서는 더 밀도 있게 집중하면서 표현과 구문을 고쳐 문학적 분위기를 가미한다. 2차 개고에서는 머릿속에 막 떠오른 것처럼 읽히도록 만드는 데 주력한다.
신참 작가들은 세 번이 아니라 그 이상, 열 번은 쓸 필요가 있다. 경력이 붙고 글을 쓴 경험이 늘어날수록 남들의 마음에 드는 원고를 쉽게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전날밤에 감동적으로 쓴 연애편지를 다음날 아침에 보면 웃음과 유치함이 묻어나듯, 한번에 끝내려는 마음가짐은 좋지 않다. 오히려 한번에 끝내려고 하면 할수록 심적 부담감으로 인해 자유로운 글쓰기에 방해를 줄 뿐이다. 일단은 막 써야한다. 빠르게. 그리고 수정에 수정을 통해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음글을 읽어보자.

그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왜냐하면 안색이 초췌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어 더욱 어두웠다.

==> 그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안색이 초췌한 데다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접속를 남발할 경우에는 글이 쓸데없이 지저분해지기 마련이다. 군더더기를 없애야 한다.

필사의 원칙도 알려준다. 난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필사한 적이 있다. 2페이지를 필사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 나름 속도를 내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글씨체도 엉망이고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은 채 무심코 필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사는 천천히 하도록 한다. 구두점 하나까지 원본 그대로 베껴야 한다. 이 연습의 목적은 저자가 의도한 정신적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데 있다. 저자가 그 작품을 생산하는 데 투입한 물리적 운동을 정확하게 모방해보는 것이다.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몬티 슐츠, 바나비 콘드라

스누피야! 타자기 앞에 앉아서 이렇게 해봐. 이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이야기는 항상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에서 시작하는 거야
(중략)…
그 다음에는, 도대체 왜 그렇게 한다는 거지, 라는 의문이 따라오겠지.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내야 해. 그렇게해서 도입부가 생긴다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수 있어.

초등학교 때 한참 추리소설에 꽂혀 있었다. 치밀하고 냉철한 홈즈 보다는 낭만적이고 바람기가 있는 루팡에 더 애착을 뒀었다. 당시 책꽂이에는 3~4권 정도의 루팡 소설밖에 없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추리소설 한 편을 쓰고 싶었다. 머리에는 갖가지 재미난 생각이 뒤엉키고 있었다. 재빨리 책상에 앉아 노트 한 권을 펼쳤다.

‘제목을 뭐로 하지. 아무래도 한눈에 관심을 끌게 만드는 제목이어야 하는데…’
하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글부터 쓰고 보자. 음 그러니까…주인공은… 아, 인물 선정부터 해야겠다. 루팡같은 멋진 인물을 하나 만들고…
근데, 사건이 있어야지. 등장인물간의 갈등 같은 거…뭘로 만들까…’

노트의 첫 장을 펼친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한 줄도 못쓰고 노트를 닫았다.
왜 그랬을까…

지난해 가을, 처음 인물 스케치 강좌를 듣기 시작하면서 이걸 에피소드로 엮으면 재미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회원들의 직업, 외모, 성격 등 캐릭터가 다양했다. 또 그들이 인물 스케치를 배우게 된 동기, 회원들과 선생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흥미가 있어 보였다. 이런 소설적인 요소와 미술적인 요소의 강좌를 함께 엮는다면 괜찮은 게 나올 것 같았다.

먼저 회원들의 성격을 분석하여 책 속에 등장할 배역을 찾았다. 재미있었다. 오랫동안 알고지내던 사람도 아니고, 단지 그림을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나의 소설에 등장시킨다는 자체가 짜릿했다. 그때 정의한 캐릭터들을 보자.

1. 미모의 여강사
40대 초반의 청순한 스타일, But 간간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함.
청바지와 캐주얼이 잘 어울리는 세련됨에도 그림 외의 지식은 부족, 음악을 싫어함, 물과 기름 같다고 생각함.
국어 맞춤법 취약함 ( 지우개를 지우게로, 다르다를 항상 틀리다로…)
자존심은 강하고 자기애가 강함 (자신만의 강의 스타일 있음, 맘 상하면 강의를 안 할 것 같은 스타일, 대회입상경력을 스스로 말할 정도로 인정욕구가 강함)

2. 은퇴한 꾀죄죄한 아저씨
건설업에 종사하다가 퇴직했음.
미술 외에 트럼펫도 배우며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음.
60대 초반 정도의 나이, 키는 작고 안경착용에 골초.
빵모자만 쓰면 영락없는 옛날 화백 같을 듯.
과시욕이 있으며 보수적인 스타일로 가치관이 이미 고정되어 남의 말을 듣지 않을 듯.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아줌마들과의 수다와 안부를 더 궁금해함.

3. 안과의사인 총무
미스테리한 의사,
라식수술을 하는 대형 병원이 아니라 안과 질환을 전문적으로 보는 동네 병원장.
복장 및 성격이 개방적이고 총무로서 책임감 강함.
의사의 안정적인 생활로 인생을 즐기려는 모습이 역력함.
와이프도 의사임.
구수한 경상도 억양이 베어 있음. 하지만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사람.
약간 각진 인상에 어찌 보면 험하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함, 특히 친절함으로 승부함.
아줌마들의 수다를 잘 들어줘서 다들 좋아함.
50대 초반.

4. 박진영을 닮은 반장
회식 때만 모습을 드러냄.
박진영을 닮았다고 했더니 본인이 정한용을 더 닮았다고 할 정도로 재미있고 유쾌함.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임.
총무와는 1살 차이(연장)로 꽤 친해 보임.
여러 가지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모습.
50대 초반.

5. 임플란트 전문 치과의사
전형적인 의사 선생님 스타일, 한눈에 의사라고 이마에 쓰여있음.
1년에 마라톤 풀코스를 3~4회 할 정도로 자기 관리 철저함.
총무와는 의사들의 모임을 통해 안면이 있고 반장과는 등산 모임을 통해 알게 됨.
예의 바르고 타인을 배려함. 너무 밋밋한 성격..
50대 중반 정도의 나이.

6. 정체불명의 중년의 여인
저녁 시간임에도 항상 검은색 모자와 옷을 입고 나타남.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신입회원 중에 제일 잘 나감.
툭툭 내 던지는 말투로 미술선생과는 코드가 맞지 않는 듯 보임.
미술 선생도 절대 그림에 대해 칭찬하지 않음.
짙은 화장으로 나이는 분간하긴 어렵지만 심각한 노안을 고려하면 50대로 봐야 할 듯.
미술수업에서 뭔가 사건과 인물 간의 갈등을 일으킬 것 같은 여인.

7. 이해력이 떨어지지만, 성격 좋은 경상도 아줌마
선생님의 설명을 절대 한번에 이해하지 못함.
똑같은 질문을 재차 질문하는 관계로 선생이 귀찮아함.
꾀죄죄 아저씨와 같이 음악수업을 받음, 그의 추천으로 미술 수업도 받으러 왔음.
그림에는 소질 없지만 나름 열심히는 함.
응용력이 현저히 떨어짐, 거의 불가능…
50대 초반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전형적인 주부 스타일.

8. 순둥이 신입 여 은행원
성격 좋은 아가씨로 착함
키가 크고 마른 체형임, 예쁘지는 않지만 착한 이미지로 호감가는 스타일.
하지만 뭔가가 있을 것 같은…예를 들면 유부남 애인이 있다거나…
20대 후반.

9.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주부
예전에 미술교육을 받았고 인정을 받았다고는 하나 전혀 미술에 소질이 보이지 않음.
50대 초반으로 전형적인 가정주부 스타일.
자존심이 세지만 정작 노력하기 보다는 핑계를 찾는데 주력함
항상 “나는 안돼”라는 마인드가 몸에 배 있어서 같이 있는 사람 김빠지게 만듦.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잡긴 했지만 정작 중요한 글이 안 써졌다. 아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사건을 만들고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표출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걸 일종의 플롯이라고 한다. 클리브 커슬러는 등장인물보다 플롯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등장인물이야 영화감독이 배우를 선발하는 것처럼 나중에 선발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책의 머리말은 꽤 길고 지루하다. 종이 재질도 좋지 않아서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그러나 본 페이지에 들어와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를 읽어보면 공감이 많이 가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은 꾸준하게 썼다. 엉덩이가 의자에 박히도록 앉아서 썼다. 몇 시간을 자리에 앉아 쉬지 않고 쓰다고 도저히 못 쓸 것 같을 때에도 몇 시간을 더 썼다. 글문이 막혀 한 줄도 쓸 수 없을 때도 쥐어짜듯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글쓰기가 어렵거나 안 써져서 포기하려고 했던 것들이 나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유명 작가들도 겪었고 극복했던 문제인 것이었다.

글은 나를 위해 써야 한다. 잘 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대화하듯 편하게 써야 독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